[채권이야기] 두 개의 중립금리가 금융시장에 주는 시사점
신동준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경제학박사
요약
중립금리는 경제 펀더멘털에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을 말한다. 2022년 뉴욕 연준은 두 가지의 중립금리 (균형금리)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와 금융경제의 균형금리 (r**)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들은 전통적으로 실물경제의 균형금리(r*)에 초점을 맞춰 통화정책을 펼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가 금융경제의 균형금리 (r**)보다 현저히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화정책을 통한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경제는 별로였지만 금융시장에는 거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주요국들은 역대급 재정지출을 통해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를 자극함으로써 경기침체를 벗어났다. 그 영향으로 팬데믹 이후에는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가 금융경제의 균형금리 (r**)보다 현저히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막대한 재정확대 정책의 결과, 연준의 강한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는 견조했으며, 금융시장에는 주기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되고 금융불안정이 발생하고 있다. 향후 경기침체는 통화긴축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가 아닌 금융불안정의 붕괴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으로 금융불안정을 방어하기 위한 연준의 보험성 금리인하는 실물경제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여 장기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다.
두 가지의 중립금리
‘중립금리 (neutral interest rate)’는 경제를 뜨겁게도, 차갑게도 하지 않는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을 말한다. 경제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도록 하는 이론적인 균형금리이자,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데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이다.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높으면 경기는 위축되고 인플레이션은 하락한다. 반대로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낮으면 경기는 확장되고 인플레이션은 상승한다. 이처럼 중립금리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정책금리)를 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자 ‘벤치마크 (Benchmark)’가 된다. 다만, 중립금리는 잠재성장률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다. 정책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추정할 뿐이다. 경제 환경이나 분석 방법 등에 따라 중립금리가 달라지기도 한다.
2022년 11월, 뉴욕 연준은 ‘두 가지의 중립금리 (균형금리)’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실물 거시경제의 균형을 달성하는 ‘자연이자율 r* (natural rate of interest, r-star)’와, 금융안정을 달성하는 ‘금융안정이자율 r** (financial stability interest rate, r-double star)’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와 ‘금융경제의 균형금리 (r**)’ 개념인 셈이다.
중앙은행들은 전통적으로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에 초점을 맞춰 통화정책을 펼친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결과가 나타난다. 두 가지 중립금리 개념은 금융위기 이후의 통화정책과 실물경제, 금융시장을 이해하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다.
‘금융안정(financial stability)’이란 쉽게 말해서 ‘금융시스템이 불안하지 않은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금융시스템은 금융기관과 금융시장, 그리고 금융인프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구성 요소가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금융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두 가지의 중립금리 (균형금리)
자료: 한국은행 일부 인용
경기침체는 통화정책이 아닌 금융불안정의 붕괴에 의해 발생할 것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가 금융경제의 균형금리 (r**)보다 현저히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준금리 < r* < r**). 당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해 주요국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사용할 수 없었고, 오로지 통화정책에 의존하여 경기침체를 벗어나야 했다. 중앙은행은 실물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완전고용에 초점을 맞춰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일본과 유럽의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와 채권매입 등 통화완화를 통해 풀린 유동성은 실물경제가 아닌 주식과 채권,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갔고, 그 결과 금융시장에서는 레버리지가 급증하고 거품이 만들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는 별로인데, 주가만 상승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는 침체에 빠지지 않았지만 불안정했고, 주식과 채권 등 금융자산 가격은 추세적으로 상승했다. 이 경우 경기침체는 중앙은행 통화긴축의 결과가 아니라 금융시장의 거품 붕괴에 의해 발생한다.
반면, 팬데믹 이후에는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가 금융경제의 균형금리 (r**)보다 현저히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r** < 기준금리 < r*).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팬데믹을 거치면서 주요국들은 회복된 재정 여력을 통해 대규모 재정확대 정책으로 r*가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낮아졌던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양적긴축을 통해 과도하게 풀렸던 유동성을 흡수하는 과정에서도 그 이상의 막대한 재정이 풀리고 있다. 재정은 주로 팬데믹 이후 가계의 소비 여력을 확충하는데 사용되었고,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에 지출되면서 직접적으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었다. 연준과 중앙은행들의 강력한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가 견조한 이유다. 그러나 이번에는 만약 중앙은행이 실물경제와 완전고용에 초점을 맞춰 통화긴축을 더 강하게 펼칠 경우 금융시장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팬데믹 이후 막대한 재정확대 정책의 결과, 연준의 강한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는 견조했으며, 금융시장에는 주기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되고 금융불안정이 발생하고 있다. 2022년 정부의 대규모 감세안에 반응한 영국의 국채 발작이나 2023년 미국의 지역은행 연쇄 부도 등이 그 사례다. 이 경우 경기침체는 통화긴축의 결과가 아니라 금융불안정의 붕괴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불안정에서 시작된 붕괴는 실물경제를 더 깊은 침체로 빠뜨린다.
금융불안정을 발생시킬 수 있는 약한 고리들
금융불안정을 발생시킬 약한 고리들에 주의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추가 재정확대 정책에 따른 장기금리 상승, 또는 인공지능 (AI) 관련 대형 기술 성장주에 집중된 주식시장의 변동성 확대도 잠재적인 불안요인이다. 지난 1월 6일 연준의 금융안정위원회 의장인 리사 쿡 연준이사는 "정책금리는 시간을 두고 보다 중립적인 기조로 이동해 가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미국 금융시스템은 건강하고 탄탄하다. 다만 사모크레딧, 스테이블 코인, 사이버 이벤트, AI에 의한 시스템 트레이딩 영역 등에 취약성이 있는지 모니터링 중이다”라고 언급했다. 수년 전부터 기업들의 IPO나 자금조달 과정에서 사모펀드나 헷지펀드, 벤쳐캐피탈 등 그림자금융의 영향력이 대폭 확대되었다. 이들의 데이터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투자처나 레버리지 수준을 알기도 어렵다. 고금리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그림자금융이 취약한 고리가 될 위험이 있다.
미국은 가계의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단기 변동금리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급여 소득으로 더 이상 이자와 임대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신용카드 대출 (리볼빙)이 급증하고 있고, 높은 신용카드 이자율로 인해 연체율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중이다. 신용카드 대출과 연체율 급증은 은행들의 신용손실 충당금을 증가시켜 금융불안정 위험을 높인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2023년 7월에 마무리되었지만, 기업들은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차환하게 되면서 고금리 부담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고금리 부담을 이겨낼 정도의 매출 성장 기대가 없는 기업들은 섣불리 설비투자에 나서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고금리 장기화의 부정적 여파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2024년 6월 발표한 ‘2023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기업 3만 2,032곳의 이자보상비율 (영업이익/이자 비용)은 2023년 219.5%로, 전년의 443.7%보다 대폭 하락했다. 2013년 통계 편제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보다 이자 비용이 더 많은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의 기업 비중은 34.6%에서 40.1%로 늘어 역대 최고치다.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차입금 평균 이자율과 금융비용 부담률이 상승한 영향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도 하락했다.
[그림] 우리나라의 이자보상비율 구간별 기업수 비중
자료: 한국은행
중립금리보다 매우 높지는 않아도, 꽤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2024년 하반기 이후 통화긴축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용과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연준은 2024년 9월 보험성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부양보다 과잉긴축을 막기 위한 목적, 즉 ‘정상화’나 ‘보험성’ 금리인하의 성격이 강하다. 2024년 12월 FOMC에서 공개한 점도표에서 연준은 중립금리를 1년 전보다 0.5%p 높아진 3.00%를 제시했지만, 19명의 위원 중 8명이 3.125%~3.875%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 4.25~4.50%을 감안하면 2~4회 정도의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남아 있는 셈이다.
현재는 대규모 재정확대의 영향으로 실물경제의 균형금리 (r*)가 금융경제의 균형금리 (r**)가 보다 현저히 높은 상황으로 추정된다 (r** < 기준금리 < r*). 연준의 통화긴축이 실물경제의 중립금리에 근접할수록, 이를 견디지 못하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커진다. 금융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적절하다. 이론적으로는 금리인하와 함께 재정긴축이 병행되어야 하겠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감세 연장 정책 등을 감안했을 때 예산 규모를 줄이는 재정긴축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만약 주식시장이 불안정하게 움직인다면 연준은 금융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더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 높아진 실물경제의 중립금리를 감안할 때, 금융시장을 지지하기 위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이제 막 진정되기 시작한 실물경제와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향후 경기침체는 통화긴축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가 아니라 금융불안정의 붕괴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으로 금융불안정을 방어하기 위한 연준의 보험성 금리인하는 실물경제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여 장기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다. 글로벌 주식시장의 상승 흐름을 즐기되, 향후 리스크는 실물경제가 아니라 그림자금융 등 금융불안정의 붕괴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으로 판단한다.
2025.1.22
매경엠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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