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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의 예언: 인류는 어떻게 현실을 등지고 메타버스로 귀의하게 되는가

bondstone 2021. 8. 7. 11:35

케인스의 예언 [1편]
인류는 어떻게 현실을 등지고 메타버스로 귀의하게 되는가

https://bit.ly/3lb8OUY

 

1930년 천재 경제학자 케인스는 한 편의 에세이를 남겼는데, 여기엔 100년 후 사회 모습에 대한  세 가지 예언이 담겨있다. 그런데 케인스가 예언한 시기까지 불과 10여년을 남겨놓은 지금,  그 예언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첫 번째 예언에서 그는 인류가 현실을 등지고 메타버스로 들어가게 될 미래를 제시한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투자자들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Summary
1930년 케인스는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100년 후의 세계에 대해 예언을 한 바 있다.


1. (생산성이 8배나 늘어서)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에 불과한 세상
2. 경제적 문제는 해결되고, 관심이 ‘즐거움, 아름다움’에만 집중되는 세상
3. 화폐를 소유물로 사랑하는 정신병이 사라지고, ‘선한 것’에 주목하는 세상


매우 대담하고 충격적인 전망들인데, 본 자료 (1편)에서는 1, 2번에 대해 다뤄보겠다.

 

1장. 100년 후, 생산성이 8배 늘어난다
케인스는 ‘자본축적+기술발전’ 덕분에 100여년 동안 유럽 경제 수준이 약 4배로 증가했다는 것을 간파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5년쯤엔 생산성이 8배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금의 추세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서구 선진국들은 케인스의 예언보다 조금 빨리 8배 증가를 이룩할 것으로 파악된다.


2장. 첫 번째 예언: ‘주당 15시간’ 노동의 시대
생산성이 8배 향상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기본적 의식주 문제들은 완전 해결되는 수준에 가까워질 것이고, 그러면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하는 ‘경제적 문제’는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면 ‘주당 15시간’ 노동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기술발전으로 미래엔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것이며, 상당수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과거 산업혁명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실업률은 ‘기술발전’이 아니라, ‘경기사이클’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1) 기술발전으로 사라질 직업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 때문에 새로 생길 직업을 상상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로켓맨, 쥬서와 같은 직업이 생길 것을 십수 년 전에 미리 예상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 생길 직업들은 종종 간과된다.


2)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이 줄어든다. 생산성과 근로시간의 상관관계는 매우 명확하다. 예를 들어 생산성이 낮았던 조선시대 노동자와 현재의 노동자의 여가시간은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이다. 국가별로 봐도 생산성이 높은 국가일수록 그렇지 못한 국가보다 근로시간은 적고, 시간당 소득은 더 높다.


결국 케인스의 예언처럼 생산성 향상은 가까운 미래에 ‘주당 15시간’ 노동의 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3장. 경제엔 관심이 없고, 즐거움에만 관심을 쏟는 세상
‘주당 15시간 노동의 시대’는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결코 축복일수만은 없을 것이다. 노동은 태초에 선악과를 먹은 인류에게 주어진 원죄이며, 태초 이래 지금까지 인류가 ‘삶을 영위해 온 목적’이기 때문이다. 두려운 생각이 든다. 무수한 세대 동안 길들여진 노동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버리고 새롭게 적응해 살 수 있을까?


이런 세상은 인류에게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 인간 사회는 ‘나태와 지루함’ 같은 정신적 압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인류의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주어질 ‘여가’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향후 ‘지루함’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미 이런 세상은 실현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아프리카TV BJ, 유튜버, 넷플릭스 등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그들이 우리를 지루함에서 구해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문제가 있는데 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해외여행, 콘서트, 골프 등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럴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이들은 저렴하면서도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에 집착하게 될 것인데, 온라인 콘텐츠, 온라인 콘서트, 게임 등이 그것이 될 것이다.


이런 세상이 바로 ‘메타버스’이다. 따라서 ‘노잼’ 서비스들은 ‘메타버스’ 생태계를 주도할 수 없다. 가장 오랫동안 즐거운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메타버스를 주도하게 될 것이며, 메타버스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콘텐츠가 바로 ‘게임’이다. 미국 10대들의 플랫폼 사용시간에서 게임은 다른 SNS, OTT를 압도한다.


또한 사람들이 가장 오래 지니고 머물 수 있는 것이 플랫폼이 되며, 다른 기능들은 플랫폼에 흡수된다는 ‘플랫폼의 법칙’에도 잘 맞아 떨어진다. 휴대폰 (애플)이나 자동차 (테슬라)가 다른 여타 기능을 흡수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원래 ‘재미를 위해’ 게임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모임을 하고 일상을 나누는 법이지, 모임을 갖기 위해 다른 플랫폼에 다시 접속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즐기고,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게임이 제2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나오는 메타버스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불행히도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선택은 부정적인 쪽으로도 방향을 뻗을 것이다. 마약, 폭력, 범죄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투자 아이디어도 제공하지 못한다. 다만 이들 중 합법화되어 산업의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투자에도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상업용 카나비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