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이러스에 의한 현금흐름 악화와 경기침체 공포

bondstone 2020. 3. 25. 11:22

[Wealth Management] 바이러스에 의한 현금흐름 악화와 경기침체 공포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경제학박사


글로벌 증시와 국제유가 (WTI)는 지난 3월 23일까지, 불과 한 달 만에 각각 32%, 56%나 폭락했다. 코로나19 확산에 국제유가 급락이 더해지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바이러스에 의한 글로벌 경기침체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중이다. 전세계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에 멈춤에 따라 현금흐름이 막힌 기업들의 단기 신용위험이 급격히 높아졌다.


국지적 전염병 정도로 여겼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며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고 있다. 코로나19의 감염자 수는 중국과 한국, 일본을 넘어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 미국 등 전세계 172개국, 44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연일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 (WHO)는 코로나19의 글로벌 대유행 (pandemic)을 선언했고, 19일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중국을 넘어섰다. 유럽 각국은 국경 통제와 자국민의 격리, 이동 금지 등 사실상의 국경폐쇄에 들어갔다. 


미국의 경제활동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GDP 1위 캘리포니아주와 3위 뉴욕주, 5위 일리노이주가 모두 자택체류 명령이 발동되었다. 2위인 텍사스주는 유가급락으로도 타격을 받고 있다. 4개 주의 GDP는 미국 전체 GDP의 1/3을 차지한다. 여타 자택 격리 명령을 내린 주들을 포함하면 미국인 약 1억 명이 이동 제한 상태이며 이는 미국 전체 인구의 1/4을 넘는 수치다.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2분기 GDP 성장률을 -30%~-12% (전기대비 연율)까지 대폭 낮춘 경기침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요국들의 국경 통제와 봉쇄, 자택 체류 명령 등이 잇따르면서 전세계의 생산과 소비, 소득 등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에 멈춰 서고 있다 (sudden stop). 현금흐름이 막힌 기업들은 부채상환 능력 저하로 단기 신용위험이 급격히 높아졌고, 근로자들은 공장 폐쇄 또는 무급 휴가로 인해 소득이 급감하는 등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이는 경제주체들의 현금수요로 이어졌고, 전세계적으로는 달러자금 수요가 폭증했다. 자산가격 급락은 자금운용기관들의 손절과 레버리지 청산, 환매, 담보가치 하락과 마진콜 등으로 이어지며 자산 매도를 촉발했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이 쉽게 현금화 할 수 있는 국채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주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장기국채 금리가 함께 급등 (채권가격 하락)하기도 했다.


여기에 국제유가 급락이 더해졌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중국의 원유수요가 감소하자 사우디와 러시아의 협력관계가 깨졌고, 추가 감산 합의 실패는 오히려 증산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 충격으로 국제유가 (WTI)는 한 달 동안 56% 폭락했다. 저유가는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긍정적이지만, 지나치게 가파른 유가 하락은 강력한 디플레 압력과 함께 신용위험을 높여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미국 에너지기업들의 손익분기점이 27~37달러라는 점에서 투기등급인 하이일드채권 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섹터 (15%)의 신용위험이 다시 부각되는 중이다. 저유가의 수혜를 누려야 할 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은 전염병으로 정상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경제, 특히 선진국의 상반기 경기침체 가능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을 전망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경제성장에 미치는 바이러스 충격의 깊이와 길이가 어느 정도 될지 예측하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의 2월 자동차판매가 전년동기대비 79%나 급감하는 등 금융위기 당시에도 보지 못한 생소한 숫자를 경험했다. 경제주체들은 당분간 상상을 벗어난 경제지표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비즈니스가 멈추고 현금흐름이 나빠진 미국기업들이 배당을 중단하고 실적전망 제시를 생략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OECD는 매월 하던 경기선행지수 발표를 취소했다.


상반기 경기침체 전망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자와 펀드매니저들이 이러한 전망을 비즈니스와 자산 포트폴리오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의 위험은 과거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때처럼 과도한 생산과 소비, 투자, 부채, 대출 등에 의해 촉발된 경제내부의 금융시스템이나 신용 (credit)의 문제가 아니다. 바이러스라는 외부 충격에 의한 갑작스러운 경제의 멈춤, 그리고 현금흐름 (cash flow)의 수축 문제다. 강력한 방역체계와 이동 통제를 도입할수록 경제 멈춤의 후유증은 극심해진다. 기업과 가계의 과실이 아닌 외부 충격에 의한 신용위험 노출은 정책을 통해 차단되어야 한다.


외부 충격은 다음 두 가지에 의해서 일시에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 바이러스의 확산 진정과 면역강화, 치료제 개발이다. 중국과 한국의 사례를 감안할 때, 3월 첫 주부터 급증한 유럽과 미국의 전염 확산의 정점은 4월 하순을 전후하여 형성될 전망이다. 중국으로 재차 전염이 넘어오는 최악의 경우를 제외하면, 하반기까지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할 합리적 이유는 부족하다. 치료제 개발도 가시권이다. 3월 20일 기준 등록된 코로나19 관련 임상연구는 총 119건이며, 이 중 55건이 실제 환자 모집을 시작했다. 길리어드사의 람데시비르를 포함한 여러 약물에 대한 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임상 성패 여부는 빠르면 4월 중순부터 시작되어 5~6월에 집중적으로 발표될 전망이며, 결과가 성공적일 경우 즉각적인 사용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신용공급을 위한 주요국들의 적극적인 재정확대와 통화완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나라마다 GDP 대비 약 20% 내외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결정되었거나 논의되는 중이다. 전세계 중앙은행과 정부 정책의 핵심은 상반기까지 신용 (credit) 공급을 통해 현금흐름이 취약해진 필수기업들과 고용창출 핵심기업의 디폴트 위험을 차단하는데 있다.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확대와 함께, 이를 지원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단기유동성 공급, 양적완화와 회사채 매입 등 신용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모든 정책패키지들이 연일 쏟아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여전히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3월 23일 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와 회사채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이 발표되고,  미국 의회에서 합의를 도출한 경기부양 규모가 2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금융시장이 정책을 반영하는 순간, 경제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겠지만 자산 가격의 회복은 폭락 당시 못지않게 가파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지금의 자산가격 수준은 이미 어느 정도 경기침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KOSPI 1,482pt (3/23)는 청산가치를 반영한 주가순자산비율 (PBR)의 0.60배로, 2008~09년 금융위기 당시의 저점 0.81배를 이미 하회했다. 1998년 외화유동성 위기 당시 (0.41배)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S&P500지수도 올해 주당순이익 (EPS)의 전년대비 10% 역성장 가정 하에서 의미있는 하단은 2,240pt이다. 급격한 변동성(Flash Crash) 하에서 동 수준들을 일시적으로 하회할 가능성은 있지만, 유럽과 미국의 전염병 확산의 정점으로 예상되는 4월 하순까지는 6개월 후를 바라본 분할 매수가 바람직하다. 분할 매수 시기는 분기 말 결산기를 감안한 3월 말과, 셧다운 이후 실적과 경제지표가 눈으로 확인되는 4월 중순 두 차례를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리스크도 남아 있다. 만약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의 의료시스템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산되거나, 중국 등 아시아로 재확산되는 경우, 그리고 초대형 헷지펀드 등 금융기관들의 환매정지 또는 파산 위기로 거래상대방 (counterparty) 위험이 불거진다면 기본 시나리오와 전략은 전면 재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2020.3.24
KB GOLD&W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