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와 뉴노멀 (New Normal)

bondstone 2019. 12. 23. 16:53

[Wealth Management]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와 뉴노멀 (New Normal)

신동준 KB증권 자산배분전략부 상무/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전세계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와 사회 전반에 다양하고 구조적인 변화들이 관찰되고 있다. 수십 년간 검증되어 온 경제이론과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고 있고,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도 만성화되는 중이다. 반면 주식과 부동산 가격들은 걱정의 벽을 타고 추세적으로 상승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있다. 무엇이 변했을까? 새로운 해가 시작된 만큼 경제학을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는 구조적인 변화들을 짚어 봤다.


미국경제, 당분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

먼저 다양한 경고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는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미국경제는 2009년 6월 이후 128개월째, 역사상 가장 긴 확장국면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곧 상승국면이 꺾일 만한 징후를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가계와 기업은 대출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늘린다. 특히 기업은 생산을 통해 재고를 미리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앞으로의 수요증가에 대비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면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며 모든 것이 꼬이면서 경기침체는 시작된다. 그러나 지금 미국경제는 경기침체 이전에 관찰되는 과도한 부채와 대출은 물론 과잉투자, 소비 및 재고 등이 별로 없다. 쌓인 것이 없다 보니 경기침체가 올 만큼 터질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 영향으로 미국경제의 상승속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완만하다. 경기확장 국면이 길어졌으니 곧 끝날 때가 가까이 온 것이 아니라, 성장이 천천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확장국면이 길어진 것이다.


경제성장이 밋밋하게 진행되었던 이유는 ‘부채 없는 성장’ 때문이다. 미국의 가계는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빚을 줄여오고 있다. 과거 경기정점 부근에서 10%를 훌쩍 넘었던 은행의 대출증가율도 현재는 5%대에 불과하다. 부채의 위기를 겪은 터라 이후 잘 안 빌리려고 하고, 잘 빌려주려고 하는 분위기다. 금융규제 강화도 한 몫을 했다. 민간에서 돈이 잘 돌지 않아 신용창출이 되지 않으니 경제성장은 느리고 물가도 오르지 않는다.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인들이다. 결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돈을 풀고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QE)가 도입되었고, 정부부채가 급증했다. 그러나 늘어난 정부부채 수준은 아직 심각한 위험요인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양적완화 또는 최근 현대통화이론 (MMT)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사주면 된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장단기 금리차가 역전되면 향후 1~2년 안에 예외 없이 경기침체가 도래했다는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도 비관론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과거 어느 때도 지금처럼 중앙은행이 대규모 장기국채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례도 없었다. 2018년 말 기준 미국의 잔존만기 15~20년 국채의 60% 이상을 연준이 보유하고 있었다. 일정 비율 이상의 국채를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규제 때문에 이들은 마이너스 금리의 채권이라도 사야 한다. 단기보다 장기금리가 더 높은 이유는 긴 보유기간 동안의 불확실성에 따른 추가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제 장기채권을 사야 하는 투자자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웃돈을 주고 구해야만 한다. 양적완화 이후 장기금리가 하락하면서 나타난 빈번한 장단기 금리차 역전은 경기침체의 반영이 아닌 수급에 의해 나타난 기술적인 현상이다. 연준 (Fed)에 따르면 미국 장기금리는 적정수준보다 약 1.1%p 정도가 더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 양극화와 뉴노멀 (New Normal)

“가계는 빚을 계속 줄여가고 있고 경제는 밋밋했는데, 주가는 왜 계속해서 오르나요? 버블 아닌가요?” 최근 수년 동안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이는 기업의 양극화 때문이다. 미국을 이끄는 대형기술주이자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 (Tech Giants 5)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의 주가는 2013년 이후 330%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표지수인 S&P500지수는 110% 상승했으며, 한국의 KOSPI는 10% 오르는데 그쳤다. 이들 소위 4차 산업혁명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나 수요를 창출하여 경제전반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기술혁신과 온라인, 플랫폼을 무기로 여타 산업과 기업들의 이익을 잠식하며 성장한다. 최근 5년 동안 Tech Giants 5의 순이익 증가율은 연평균 15.9%에 달한다. 반면 S&P500 기업들의 순이익은 7.4% 증가했는데, 초우량 500개 기업인 이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GDP와 함께 발표되는 미국 전체기업들의 이익은 Tech Giants들에게 이익을 빼앗기며 최근 5년간 연평균 2.4% 증가하는데 그쳤다. 시가총액 상위 소수 기업들만 성장하며 주가상승을 이끌어 갈수록 경제전반과 여타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익을 잠식당하며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기업의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면 아마존 등 대형 기술기업들의 고용은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소수의 고임금 인력과, 물류창고를 관리하는 다수의 저임금 인력으로 구분된다. 사람을 많이 고용한 산업일수록 임금수준은 평균 이하에 머물고 있다 보니, 미국의 실업률은 1969년 이후 최저 수준이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고용시장의 양극화는 저임금과 저물가의 배경도 된다.


양극화는 경제에서도 관찰된다. 미국의 ‘투자’는 주택투자를 제외하면 구조물과 장비 (설비), 지적재산권 상품 투자 세 부문으로 나뉜다. 전통적인 산업과 연계된 구조물 및 산업/운송/기타 장비투자는 아직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추세적으로 감소하는 중이다. 반면 신산업과 관련된 지적재산권 상품과 정보처리장비 투자는 비중이 작지만 추세적이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결국 이들을 합친 전체 경제지표는 밋밋하게 성장하거나 둔화되면서 퇴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신산업들은 작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차별화되는 중이다. 경제는 현재를 반영하여 밋밋하지만, 주가는 미래의 성장성을 반영하며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대형 기술주들에게 높은 시장가치를 부여하는 중이다. 이러한 추세가 전통산업으로 다시 되돌려질 수 있을까? 경제와 괴리되고 있는 주가는 버블이 아니라 산업구조가 변화된 금융위기 이후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경제든 금융시장이든 전체를 보고 있으면 투자기회를 놓칠 수 있다. 분리해서 보고, 성장하는 섹터에 집중해야 한다.


축소균형 시대의 투자 아이디어

수십 년간 우리가 배웠던 기존의 경제학은 경제성장과 인플레로 상징되는 확대균형의 시대를 가정하고 있다. 즉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는 성장했고, 기업들은 자본투입을 늘려 사업을 확장했고 시가총액은 커졌다. 이어서 인플레가 발생하면 중앙은행은 인플레를 막기 위해 통화정책을 펼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 인류가 맞이해야 할 인구감소의 시대는 역성장과 디플레에 익숙해져야 하는 축소균형의 시대다. 일본처럼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 (2008년부터)한 나라도 있고, 아직 인구는 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처럼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시작된 나라들도 있다. 금융시장의 가격들은 미래에 예상되는 현금흐름을 앞당겨 현재에 반영하며 형성되기 때문에 이미 우리가 거래하고 있는 금융자산에는 미래의 인구감소 현상들이 녹아 있다.


축소균형의 시대가 무조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일본처럼 1인당 GDP가 성장하는 한 개인의 삶의 질은 개선될 수 있다. GDP보다 1인당 GDP가 중요하다. 축소균형의 시대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는 역성장한다. 이제 경제나 수요가 커지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자본을 축소해야 한다. 디플레가 발생하고 중앙은행은 디플레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다. 이미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자사주 매입 말고는 수요가 없기 때문에 금방 무너질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미국 증시를 주도했던 Tech Giants들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따른 발행주식수 축소와 배당확대는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축소균형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인당 GDP와 같은 맥락에서 ROE (자기자본이익률)를 높이려는 노력이다. 이 기업들은 저금리 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자기자본을 줄인다. 이런 정책이 가능할 만큼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 간의 차별화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중요한 이슈다.


[그림1] 미국 가계, 금융위기 이후 부채 축소 지속

자료: Bloomberg, KB증권


[그림2] 미국 투자의 산업별 차별화

자료: Bloomberg, KB증권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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