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lth Management] 반전된 환경, 중립금리의 상승
신동준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KB증권 S&T부문 상무/ 경제학박사
요약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추세적으로 하락하던 중립금리 (균형금리)는 팬데믹을 전후로 상승 반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립금리’는 경제를 뜨겁게도, 차갑게도 하지 않는 적절한 균형금리 수준을 말한다. 만약 현재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충분히 높다면 경제는 위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중립금리 자체가 한 단계 더 높아졌다면 현재의 기준금리가 충분히 긴축적이지 않을 수 있다. 연준의 강도높은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을 웃돈다는 것은 현재 기준금리가 매우 긴축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탈세계화와 에너지 전환에 따른 대대적인 투자 증가,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 그리고 재정적자 급증에 따른 국채발행의 자본비용 상승 등이 팬데믹 이후 중립금리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립금리 (neutral interest rate)’는 경제를 뜨겁게도, 차갑게도 하지 않는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을 말한다. 경제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도록 하는 이론적인 균형금리이자,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데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이다. 뉴욕 연준의 이코노미스트인 라우바흐와 윌리엄스 (Laubach and Williams)는 이러한 정의에 장기적인 의미를 더해 수요와 공급에 대한 일시적 충격이 소멸되어 완전한 잠재 수준의 경제와 일치하는 ‘실질 단기금리’로 정의하기도 하였다. 이는 자연이자율 (natural rate of interest) 또는 r스타 (r-star, r*)과 동일한 개념이다.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높으면 경기는 위축되고 인플레이션은 하락한다. 반대로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낮으면 경기는 확장되고 인플레이션은 상승한다. 이처럼 중립금리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정책금리)를 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자 ‘벤치마크 (Benchmark)’가 된다. 다만, 중립금리는 잠재성장률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다. 정책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추정할 뿐이다. 경제 환경이나 분석 방법 등에 따라 중립금리가 달라지기도 한다.
연준 (Fed)은 2022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단 1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5.25~5.50%으로 5.25%p나 가파르게 인상했다. 전례없이 공격적인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2024년 상반기까지 미국경제는 고용과 소비를 중심으로 탄탄한 모습을 보였다. 인플레이션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미국경제의 역사상 가장 긴 경기확장기였던 2009년 7월~ 2020년 2월까지 미국의 월 평균 비농업부문 신규고용은 16.6만명이었다. 반면 연준이 통화긴축에 나선 이후 월 평균 신규고용은 2022년 37.7만명, 2023년 25.1만명, 2024년 상반기 22.0만명으로 고용시장은 완만하게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탄탄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024년 6월 전년동월비 3.0%로 낮아지고 있지만 물가안정목표인 2.0%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다. 주가지수는 사상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2024년 7월 국제통화기금 (IMF)은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2024년 2.6%, 2025년 1.9%로 전망했다. 연준의 잠재성장률 1.8%보다 여전히 높다. 연준의 강도높은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을 웃돈다는 것은 현재 기준금리가 매우 긴축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림] 미국의 기준금리와 비농업부문 신규고용
자료: 미국 노동통계국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그렇다 보니 통화긴축의 효과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이 아닌지, 기준금리를 더 인상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중립금리 수준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는 주장도 꾸준하게 제기되었다. 2024년 3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연준의 강도높은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2%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중립금리 때문일 수도 있다”면서 “중립금리는 현재 명목 기준으로 4% 정도로 추정되며, 현재 기준금리인 5.25~5.50%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통화정책이 그렇게 긴축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연준은 2024~2025년 중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의 기준금리 5.25~5.50%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면,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를 부양하는 것보다는 과잉긴축을 막기 위한 목적, 즉 ‘정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금리인하를 시작하고 나면 금융시장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수준까지 내릴 것인지에 대한 정상화의 ‘기준’이다. 중앙은행은 물론 정부도 그 기준에 따라 정책의 회수 속도와 강도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준 총재는 중립금리를 의미하는 r-star (R*)의 ‘star (*)’를 두고 “항해의 지침이 되었던 북극성이 희미하고 흐릿해졌다”면서 팬데믹 이후 기준을 설정하고 정책을 실행하는 데에 따른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만약 현재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충분히 높다면 경제는 위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중립금리 자체가 한 단계 더 높아졌다면 현재의 기준금리가 충분히 긴축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를 진정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기준금리를 높아진 수준에서 더 오랜 기간 유지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연준이 2024~2025년 중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더라도 금리인하 폭과 속도는 투자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작고 천천히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중립금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1980년대 이후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뉴욕 연준에 따르면, 미국의 중립금리는 1960년대 4~5% 수준에서 1980~2000년 중 약 3% 수준으로 낮아졌다. 중립금리는 특히 200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낮아졌는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세계대전 이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일하면서 소비보다 저축을 늘렸고, 아시아의 제조업 중심 수출국과 중동의 원유 수출국들은 경상수지 흑자로 저축이 쌓였기 때문이다. 즉 소비나 투자를 위한 ‘자금 수요’보다 과잉저축에 의한 ‘자금 공급’이 많아지면서 중립금리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돈을 쓰려는 사람보다 저축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금리는 낮아진다.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도 주요국의 중립금리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기대 수명 증가로 저축이 늘면서 중립금리가 하락했고, 고령화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도 중립금리를 낮추는 요인이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중립금리는 2010년대 뉴 노멀 시대에는 1%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결제은행 (BIS)은 다양한 분석 방법을 통해 다양한 자연이자율 (r*)을 추정했다. 자연이자율은 실질 단기금리이므로 여기에 기대인플레이션을 더하면 명목 중립금리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추정 결과, 팬데믹 이후 미국의 자연이자율의 하락 추세가 마무리되고 반등하는 조짐이 관찰된다. 대부분의 추정치들이 팬데믹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꽤 상승했고, 일부는 2%를 상회하기도 했다. 다만, 방법론에 따라 최고와 최저 추정치의 차이가 약 1~2%p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단기적인 변동이나 수준보다는 ‘추세’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서 봐야 한다. 중립금리 (자연이자율)는 의미있는 반전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미국의 중립금리 (자연이자율) 추정
주: HLW 모형 (Holston-Laubach-Williams의 연구 결과)이 뉴욕 연준의 추정치. Survey는 미국 프라이머리 딜러 (primary dealer) 설문조사
자료: BIS
추세적으로 하락하던 중립금리를 상승 반전시키는 요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도록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그 요인들을 살펴보자.
#첫째, 탈세계화와 에너지 전환에 따른 대대적인 투자, 미국의 '재산업화 (reindustrialization)'가 중립금리를 높이고 있다. 탈세계화와 에너지 전환에 따른 신규 투자와 자금 수요는 성장잠재력과 중립금리를 높이는 요인이다.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은 해외 노동력과 공급망의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 내 제조 인프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세 가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11월 인프라법 (IIJA), 2022년 8월 반도체법 (CHIPS),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등이다. 법안들은 미국의 노후된 인프라를 재건하며,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 영향으로 미국의 제조업 건설지출이 2021년 후반부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 현장의 건물과 구조물, 고속도로와 도로, 상업시설, 전력, 교육시설 등에 대한 지출이다. 이를 미국의 ‘재산업화 (reindustrialization)’, ‘산업의 르네상스 (industrial renaissance)’, ‘미국 자본자톡의 재건 (the rebuilding of the American capital stock)’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제조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 (infrastructure)는 중요한 장기 투자테마가 될 것이다. 에너지 및 유틸리티 인프라, 운송, 부동산, 철강 및 조선 업종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림] 미국 제조업 건설 지출, 주로 IT 부문 투자가 급증
자료: US Census Bureau
둘째, 기술 혁신에 따라 생산성이 높아졌거나 높아지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변화들이 나타났다. 팬데믹 기간 동안,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멀리 있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화상회의 시스템이 낮은 가격으로 큰 거부감 없이 폭넓게 보급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낮은 비용으로 만날 수 있는 기술 변화로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재택근무나 혼합근무가 확산되면서 협업 툴 사용을 통한 생산성 향상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 인공지능 (AI) 기술이 적용되고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청소기와 세탁기가 인간의 물리적 노동을 줄였듯 AI는 사람들의 인지노동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일상의 인지노동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면 남는 시간을 창조적인 업무에 집중하면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자본의 한계생산이 증가하면 성장잠재력과 중립금리가 높아진다.
셋째, 팬데믹 이후 주요국들의 재정적자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국채 발행 등 자본시장을 통한 정부의 자금수요가 높아졌다. 미국 재무부의 적자국채 발행도 구조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재정지출 증가와 국채발행에 따른 자본비용 상승은 모두 중립금리를 끌어 올리는 요인들이다. 미국 의회예산국 (CBO)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2024년 GDP의 7.0%에서 2034년에는 GDP의 6.9%로 큰 개선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되었다. 그러나 누적 재정적자의 영향으로 GDP 대비 정부의 부채비율은 2024년 99%에서 2034년 122%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쟁 중이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106%를 훌쩍 넘어선다. 이자를 갚기 위한 지출인 ‘순이자 지출’은 2024년 8,920억 달러로 국방 재량지출을 넘어서고, 2034년에는 1조 7,000억 달러로 거의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에 GDP 대비 2.4%에 불과하던 순이자 비용이 2034년에는 GDP의 4.1%로 증가할 전망이다. 2034년까지 향후 10년 동안 재정적자의 무려 60%가 이자를 갚기 위해 사용된다. 순이자 지출을 제외한 기초수지 적자 (primary deficit) 역시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등 사회보장 지출이 대폭 증가하면서 쉽게 줄어들지 못하는 구조다. 에너지 전환과 국방비의 비중도 더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에 발행되었던 장기국채가 만기도래와 함께 고금리로 차환 발행되면서 이자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GDP 대비 연방 정부부채 비율, 2054년 166% 전망
자료: 미 의회예산국 (CBO) 추정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만약 중립금리가 더 높아졌다면, 물가안정목표인 2% 수준으로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야 하거나 과거보다 더 높아야 한다.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이 미국이 집권당에 상관없이 장기화되면서 신규 투자는 가속되고, AI 기술 적용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높은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위한 정부의 국채 발행 증가 등 앞으로 중립금리를 더 높이는 요인들이 많아 보인다. 그 영향으로 팬데믹 이후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겪었던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성장과 물가, 금리 환경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중립금리보다 매우 높지는 않아도, 꽤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2024년 하반기 이후 드디어 통화긴축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융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한 연준의 보험성 기준금리 인하는 적절하다. 반면 그 영향으로 이제 막 진정되기 시작한 실물경제에는 과열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재정긴축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양당은 모두 기존의 감세 정책을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내 건 상태다. 특히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는 감세를 연장하거나 영구화하는 것은 물론 추가적인 세금 감면도 제공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높아진 중립금리로 인해 기준금리 인하가 실물경제와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금융시장에는 2025년 말 약 3.75%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되어 있다. 경제가 예상치 못한 금융불안정 붕괴로 침체에 빠지지 않는 한, 역설적으로 추가 인하는 제한적일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장단기 금리차는 확대될 것이다. 금리 하락에 따른 자본차익 목적의 장기채권 투자자라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마무리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전 차익실현이 바람직하다.
(동 의견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소속 회사 (KB증권)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4.7.31
매경엠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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