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크레딧 채권시장의 변화

bondstone 2012. 7. 1. 01:42

<마켓트랜드-채권> 크레딧 채권시장의 변화
(2012.6.13)

 

 

안전자산 선호로 국채금리는 역사적 최저점에 근접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스페인 은행의 디폴트 우려 등 유로존 위기에 따른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가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주요국의 국채10년 금리는 연일 역사상 최저치를 깨고 하락하는 중이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 호주, 뉴질랜드, 덴마크, 스웨덴 등 상대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양호하거나 덩치가 큰 나라들은 물론이고, 작년에는 남유럽 익스포져가 커서 위험국가로 분류던 벨기에와 오스트리아의 국채10년 금리마저 역사적 최저치를 경신했다. 아시아에서는 달러에 연동되어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 국채금리가 역사상 최저점이다.
 
우리나라 국채금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고채 5년과 10년 금리는 각각 역사적 최저점인 3.33%, 3.55%에 모두 0.02%포인트 차이로 바짝 다가섰다. 국고채 3년 금리는 역사적 저점(2.90%)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지만,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3.25%로 금리가 같다. 6월8일 현재 만기별 국채금리를 보면 수익률곡선은 완전히 누워있다. 3개월~9개월짜리 금리가 3.29%, 1년~2년짜리 금리가 3.26%, 3년짜리 금리가 3.25%로 3개월부터 3년짜리까지 금리는 오히려 역전되어 있다. 5년 금리도 3.35%에 불과하다보니 어떤 만기의 채권을 사도 이자는 거의 같다. 차라리 금리가 3.54%인 3개월 만기 CD(양도성예금증서)를 사는 게 더 나을 정도다.

 

수익률곡선이 누워 있는 이유는 경기둔화와 함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다면 단기금리가 먼저 하락하면서 장단기 금리차이가 확대되지만, 지금처럼 당장은 아니더라도 하반기 언젠가는 하게 될 것 같다는 기대가 형성되면 가장 유동성이 좋은 3년과 5년 금리가 먼저 하락한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가격은 올라가고 이자 외에 자본차익(capital gain)이 생긴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제조업지표 부진 등 하반기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선진국 뿐 만 아니라 브라질, 중국 등 신흥국들도 기준금리 인하에 동참하고 있다.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하 논의는 없었다”던 한국은행총재도 6월에는 “금리동결은 만장일치였지만, 여러가지 변화 가능성에 대한 후속 대안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에 불을 당겼다. 현재 채권시장은 6개월래 기준금리 인하를 한차례 이상 반영하고 있는 상태다. 은행의 정기예금, 보험사의 예정이율, 증권사의 CMA/RP금리 등 조달금리보다 낮은 시장금리 때문에 조달-운용금리간 역마진에 노출된 자금운용기관들의 고민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채권의 본질은 이자다. 채권가격 상승으로 자본차익이 생기고 있지만, 채권시장에서도 행복한 투자자는 별로 없다.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 선호의 수혜를 받는 우량 크레딧채권
반면,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기관들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고금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회사채 금리수준도 낮아졌지만, 하락속도도 국채금리보다 가파르다. 금융위기 직후 한 때 9%까지 치솟았던 우량 회사채(AA-등급) 3년 금리는 3.76%까지 하락했고, 올해 들어 가장 인기가 높았던 AA0등급의 캐피탈채 3년 금리는 3.74%까지 떨어지면서 역사상 최저치 밑으로 떨어졌다. 경기민감도가 높아서 경기가 둔화될 때 선호하지 않았던 캐피탈채들까지도 상대적인 고금리 매력을 앞세워 안전자산 선호의 수혜를 받고 있다. 같은 신용등급이라도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채권들은 동일등급보다도 0.20%포인트 이상 낮은 금리에 발행되거나 거래된다. 그래도 회사채를 찾는 투자자는 많다.

 

경기둔화기에는 이론적으로 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지면서 크레딧채권과 국채와의 금리차이를 의미하는 신용스프레드는 확대된다. 그러나 최근 채권시장에서는 경기둔화 우려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채 스프레드는 오히려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이는 최근에만 나타나는 이례적인 현상은 아니다. 시가평가 이후 우리나라의 신용스프레드 움직임은 대체적으로 경기와 역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첫째, 안전자산 선호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자산시장 불안이 지속됨에 따라 채권과 고정금리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실제로 99년 이후 AA등급 이상 우량 크레딧채권의 부도확률은 zero로 디폴트 사례는 없었다. A등급은 0.61%에 불과하지만, 99년과 03년을 제외하면 부도확률은 zero였다. AA등급 이상 우량 크레딧채권의 경우 경기둔화기에도 우수한 재무지표와 역사적 부도확률 ‘zero’를 바탕으로 고정금리를 원하는 안전자산 선호의 수혜를 받는다. 기준금리 인하 초기에 신용스프레드가 크게 확대되는 경향이 있지만, 크레딧채권의 신용위험이 높아서라기 보다는 유동성이 좋은 국채금리의 하락이 두드러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금리인하가 마무리되면 신용스프레드는 점진적으로 축소된다.

 

두번째는 외국인에 의한 Shift와 신규 수요의 유입이다. 외국인은 현재 약 83조원의 원화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 증가로 국채금리가 적정 수준 이하로 낮아지면, 그 영향으로 국내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국채 비중을 줄이고 크레딧채권 투자를 늘리게 된다. 크레딧 투자 초기에 자금은 공사채와 은행채를 중심으로 유입되지만, 금리가 낮아지면서 더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점차 차상위 신용등급의 크레딧채권으로 옮겨간다. 실제로 올해 들어 그동안 회사채를 투자하지 않던 기관들이 AAA등급 회사채 투자를 시작했으며, 투자 대상 감소에 따라 AA등급을 주로 매수하던 기관들은 A등급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투자하던 등급의 하한선을 낮추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외국인들조차 크레딧채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영향으로 재무지표가 우수한 AA등급은 물론,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A등급 이하 기업들의 신용스프레드도 축소되는 흐름이다. 외국인들의 참여로 국채금리가 적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듯, 외국인들에 의해 국내수요가 국채에서 크레딧물로 Shift되면서 신용스프레드가 한 단계 더 낮아지고 있다, 최근 스프레드의 축소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원화채권의 위상 변화가 국채를 거쳐 이제는 우량 크레딧채권까지 옮겨가는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과거의 신용스프레드나 회사채 금리의 잣대로 오늘의 금리를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동부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본부장 신동준
djshin@dongbuhappy.com / 369-3273

 

20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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