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et Allocation

[해설판] 제로금리 시대의 자산배분전략은?

bondstone 2019. 9. 21. 12:49

[해설판] 제로금리 시대의 자산배분전략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국채 10년 금리가 0%대에 진입한 국가들의 고령화율과 한국의 인구추계를 이용해 추정한 결과, 우리나라도 향후 4년 내에 국채 10년 금리가 0%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는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과 같은 궤적으로 움직이는데,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2%대 후반에서 2020년대에는 2% 내외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의 성장 기여도 하락이 주된 요인이다. 한국의 고령화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로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제로금리는 이론적으로 가계의 운용자산을 저축으로부터 투자, 부동산 등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이자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자산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자산 투자를 늘린다는 것이다. 부동산 대출 등 대출도 늘어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일본이 1991년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통해 경험했듯이, 제로금리는 금리 그 자체의 영향보다는 고령화에 따른 디플레, 저성장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비즈니스의 기회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대출도 크게 늘지 않는다. 오히려 제로금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투자부진으로 이어지고, 경제와 기업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낮추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기업의 보수적 경영 기조는 경제성장을 더욱 둔화시킨다. 제로금리가 디플레와 결합되어 마이너스 물가에 따른 실질금리 상승이 나타나면 소비와 투자는 한 단계 더 위축되고 예금과 현금수요 등 안정성을 추구하는 보수적 경향은 더 강화된다.

 

수십년간 우리가 배웠던 기존의 경제학은 경제성장과 인플레로 상징되는 확대균형의 시대를 가정하고 있다. 즉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는 성장했고, 기업들은 자본투입을 늘려 사업을 확장했고 시가총액은 커졌다. 이어 인플레가 발생하고 중앙은행은 인플레를 막기 위해 통화정책을 펼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 인류가 맞이해야 할 인구감소의 시대는 역성장과 디플레에 익숙해져야 하는 축소균형의 시대다. 일본처럼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 (2008년부터)한 나라도 있고, 아직 인구는 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처럼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시작된 나라들도 있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만약 100명이 한 식당에서 10,000원짜리 식사를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고령화는 진행되고 생산성은 증가하면서 50명이 사망했다. 이제 나머지 50명이 같은 식당에서 15,000원짜리 밥을 먹는다.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환경은 이렇지 않을까? (정확하게 말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밥값보다 물가하락 속도가 더 빨라져서 밥의 실질가치가 올라간다는 의미) 그렇다면 인구x식사값으로 계산되는 경제규모 (GDP)는 감소한다. 역 (-) 성장이다. 그러나 이들은 불행한가? 경제규모와 ‘국력’은 축소되더라도 1인당 GDP가 성장하는 한 개인의 삶의 질은 개선될 수 있다. GDP보다 1인당 GDP가 중요하다.

 

이렇듯 축소균형의 시대가 무조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축소균형의 시대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는 역성장한다. 이제 경제나 수요가 커지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자본을 축소해야 한다. 디플레가 발생하고 중앙은행은 디플레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다. 이미 그런 조짐들이 있다. “미국 주식시장은 자사주 매입 말고는 수요가 없기 때문에 금방 무너질 것이다”라고 많이 이야기들을 한다. 실제로 지난 수년 간 미국 증시를 주도했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대형기술주들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따른 발행주식수 축소와 배당확대는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축소균형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인당 GDP와 같은 맥락에서 ROE를 높이려는 노력이다. 이 기업들은 초저금리 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자기자본을 줄인다. 이런 정책이 가능한 기업들만 주가가 상승한다. 한국에서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중요한 이슈다.

 

제로금리 시대에서는 경기침체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잠재성장률이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마이너스 성장은 빈번하게 나타난다. 2000년대 이후 전기비 평균성장률이 0.2~0.3%에 머물렀던 유로존은 지난 20년간 역성장에 빠진 기간이 27%에 달했다. 20년 동안 1년에 1개 분기는 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의미다. 이런 경제가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니 경기침체에 진입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제로금리는 곧 역성장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지만, 역성장이 곧 ‘금융위기급 경기침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투자의 기회는 늘 있다.

 

주식은 앞서 이야기했다. 저성장과 제로금리는 주주들로 하여금 설비투자를 통한 확장보다는 자사주 매입, 배당확대 등을 통한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요구하도록 만든다. 이익성장을 통해 초저금리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여 자본을 축소시킬 수 있는 기업, ROE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업,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광범위한 수요감소로 시가총액이 감소하더라도 주가는 상승할 수 있다. 아쉽지만 대부분 해외기업들이다. 해외 투자를 늘려야 하는 이유다.

 

부동산 시장은 차별화될 것이다. 높은 실질금리를 감당할 수 있고, 임대수익이 가능한 수도권의 핵심지역 또는 개발 이슈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만 부동산 가격이 유지될 수 있다. 은행의 예금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부동산시장은 월세와 임대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며 전세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2011년부터 임차 가구 중 전세보다 월세 비율이 높아져서 이미 60%가 넘는다. 임대인이 부동산 가격의 하락 위험을 임차인에게 전가하면서 월세와 임대수익은 예금금리를 대폭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저금리로 급여소득의 현재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은퇴한 고령자로부터 소득이 있는 청장년 계층으로 부의 재분배 효과를 가져온다.

 

상속 및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현금화폐 수요도 증가한다. 학자들 중에서는 탈세와 범죄 등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액권 지폐를 폐지하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현금거래를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화폐개혁에 대한 걱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은행의 예금 이탈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현금 보관을 위한 금고 및 감시비용, 지급결제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현금화폐 수요가 대규모 은행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부채부담 확대로 종신 및 연금보험의 시장규모가 축소되고, 예대금리차 축소로 은행의 수익성이 낮아질 것이다. 보험사와 연기금의 운용수익률 (Total Return)도 낮아질 전망이다. 그럴수록 해외투자를 포함한 자산운용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며, 수수료가 저렴한 인터넷은행, 핀테크, 인공지능 (AI) 기반 등의 자산운용 등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금융투자업과 카드산업 등 수수료 중심 구조의 비즈니스들은 규모의 경제를 위한 대형화가 불가피하다. 기업들은 부채인 퇴직연금 적립금 부족분 부담이 높아지고, 사업자금 중 일부가 퇴직연금 부족을 채우기 위해 투입되면서 기업의 성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성장하는 자산과 기업들을 찾기 위한 해외투자 확대는 불가피하다. 외환전략의 중요성은 점차 더 강조될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해외투자를 통해 대외순자산 규모를 선제적으로 늘려둬야 한다. 고령화에 따른 저축총량 감소로 2030년부터는 우리나라도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배당, 이자 등 본원소득수지 흑자가 상품수지 적자를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해외투자를 통한 선제적 대외순자산 확대를 통해 미래의 경상수지 적자 위험을 방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