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뉴욕탐방기: 낙관적인 컨센서스, 그곳에서 찾는 투자 아이디어

bondstone 2022. 10. 21. 18:46

[뉴욕탐방기] 낙관적인 컨센서스, 그곳에서 찾는 투자 아이디어

10월 10~13일 동안 3년 만에 뉴욕의 IB들을 탐방하고 왔습니다. 월가의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 부동산투자회사를 만났고, 그 전주에는 한경 글로벌마켓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주로 JP모건, BoA메릴린치, 씨티,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등의 이코노미스트와 주식, 채권, 원자재 담당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을 만났습니다.

#1. 경기침체 전망에도 불구하고 매우 낙관적인 월가
살인적인 물가와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뉴욕 현지는 활력이 넘쳤고 매우 낙관적이었습니다. 만났던 모두가 예외없이 미국 가계와 기업의 재무상태가 매우 건전하며 노동시장이 견고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대부분 내년 중반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과거와 달리 과잉이 붕괴된 결과가 아니며, 에너지 자립마저도 가능하다는 점 등이 낙관론의 근거였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높은 이자비용에 따른 신용위험에 대해서는 고금리 환경에서 가계와 기업의 재무상태가 악화될 수 있지만, 과거에 비해 재무상태가 훨씬 건전하기 때문에 연준의 통화긴축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힘이 강하다는 의견들입니다. 미국은 장기 고정금리 계약이 많아 기준금리 인상이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차가 꽤 있을 것인 반면, 오히려 동반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는 주변국과 신흥시장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유럽은 내년 경기침체에 진입할 것이며, 중국은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주식이라기보다 "미국"인 것 같았습니다.

#2. 낙관적인 컨센서스가 오히려 리스크, 달러강세 지속 가능성
너무 낙관적이라 리스크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로 보입니다. 현지에서 숱하게 들었던 얘기는 "연준의 긴축과 경기침체는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 물가는 내년 말까지 기저효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용시장이 매우 좋다면서? 그럼 물가가 생각했던 수준으로 떨어질까? 연준이 기준금리를 5% 위로 더 끌어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럼 장기금리는 하락할 수 있을까?” 등 리스크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컨센서스를 벗어난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컨센서스는 틀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향후 가격에 반영되어야 할 위험 요인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완만한 침체 (mild recession)를 넘어 위기 (crisis)에 빠질 가능성을 찾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극단적인 위기 시나리오보다는 미국과 미국 외 지역의 차별화가 지속되면서 달러강세-원화약세가 추세적으로 더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좋으면 긴축을 더 강하게 하면서, 반대로 위기에 빠지면 그래도 기축통화라는 측면에서 달러강세는 당분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일부 펀드매니저의 소수 의견이긴 했지만 1년 내 달러당 8위안을 보는 곳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5%가 넘습니다. 통화약세와 물가상승이 미국보다 유럽과 아시아, 신흥시장에 더 충격을 줄 위험이 높아 보입니다. 한경 컨퍼런스에 참석한 에릭 로젠그렌 전 보스턴연은총재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강세는 다른 나라들의 물가를 끌어올려 아시아 등의 스트레스를 더 키울 것이며, 기업들은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3. 활발한 노동시장, 기대인플레이션은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
높은 물가에도 맨하튼 곳곳은 어딜가나 북적였고, 실내 어디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스타벅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매장에 “사람구함” 표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일손이 부족해서 계산하고 청소하다를 반복하다 보니 매장은 이전보다 많이 지저분했습니다. 새로 출근했는지 일이 서투른 직원들도 종종 보였습니다. 그만큼 접객 업종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습니다. 가장 급여가 낮았던 분야의 임금상승률이 대면 업종 기피로 가장 높게 나타나면서 인플레이션의 하방을 탄탄히 받치고 있습니다. 한편, 팬데믹 당시 백신 미접종자들을 위해 식당에서 임시로 길가에 마련한 실내포차(?)는 뉴욕의 명물이 된 듯 합니다. 마스크는 쓰지 않지만, 사람들은 고급식당에서도 그래도 사람 접촉이 덜하고 알록달록 조명과 화분으로 예쁘게 꾸며진 이 자리를 더 선호했습니다. 

물가는 엄청났습니다. 샌드위치 편의점인 프레타망제 (Pret A Manger)에서 아침에 셋이 애그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한잔씩 먹었더니 62,000원(=43달러)입니다. 특별한 곳이 아니더라도 점심은 1인당 50~70불, 저녁은 70~100불 정도는 잡아야 했습니다. 우버 택시로 미드타운에서 로어 맨하튼까지는 20~30분 거리지만 약 50,000~72,000원(=35~50달러) 정도 나왔습니다. 방문했던 뉴저지의 한국계 사업장에서는 “멋모르고 조그만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실외기를 밖으로 빼내느라 무려 2천만원이 들었다”라며 인건비가 더해진 미국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높은 물가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수요가 많고 일자리 걱정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아직 보조금도 여러모로 받고 있기 때문에 기대 인플레이션은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쉽게 진정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역설적으로 과잉수요를 제어하기 위해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더 강하게 해야 할 리스크는 매우 높아 보입니다.

#4. “연준의 예측은 계속 틀릴 것”, 연준은 어떻게 실수했을까
한경 컨퍼런스에는 에릭 로젠그렌 전 보스턴연은총재가 참석했습니다. 그는 작년 말까지 연준에서 일하다 거액투자 논란으로 사임한 바 있습니다. 퇴임 직후라 그런지 그는 이례적으로 매우 직설적인 발언을 쏟아냈는데요.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오판한 이유는, 현재 연준의 경제 추정모형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전염병과 공급충격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현재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석유와 식량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항목의 문제로 바뀌었다. 연준의 예측은 계속 틀릴 것”고 단언했습니다. 인플레의 1/3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물론 노동시장의 기대치가 하락하기 어렵다면서, 특히 인건비는 꾸준하고 영속적이기 때문에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연준이 노동시장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연준은 완전히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지속적이고 집요한 인플레이션에 놀라는 중이다. 그러나 3~4%대 실업률에 물가가 안정된다는 그들의 전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연준의 예측은 계속 틀릴 것이며 기준금리는 더 인상해야 할 것이다. 이는 유럽 등 다른 중앙은행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예측모형 값은 전환점을 전망하지 못한다. 저소득층은 실질소득 감소로 충격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등 이례적으로 강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말미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년 말에 그만 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며 웃었습니다.

#5. 경기가 나빠져도 장기금리는 꽤 올라갈 것
펀더멘털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와 달리 내년 장기금리는 경기순환 상 대부분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내년 중반 이후 경기는 완만하더라도 침체에 빠질 것 (mild recession)이고, 결국 물가가 안정되면 연준도 기준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라는 시각이 컨센서스였습니다. 만났던 투자은행 중 SG가 가장 강한 view를 제시했는데요, 미국 국채10년 금리가 올해 4분기를 정점으로 내년 3분기에는 2.85%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장기금리 하락에 대한 컨센서스가 너무 확고하기 때문에 오히려 틀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소수의견들이었습니다. 

이 의견들을 종합하면, “지금 국채투자자들이 실수하는 것은 앞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장기금리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경기가 나쁘면 자금수요가 줄기 때문에 금리가 하락했다. 그러나 이 경로가 달라졌다. 지금은 민간의 자금수요가 줄어도 정부가 빌려야 하는 돈의 규모가 이를 압도한다. 경기가 나빠져도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정부가 하고자 하는 것은 에너지 전환, 그리고 공장설비 등 인프라 투자다. 과거에 비해 엄청난 돈이 필요한 구조다. 정부는 더 빌려야 하는데, 양적긴축 (QT)을 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중앙은행들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방어에 나서고 있다. 달러를 팔기 위해 미국 국채를 팔아야 한다. 환헤지 후 미국 국채를 매수하던 일본 등의 매수자금도 이제는 역마진이라 멈췄다. 보유채권 가격 하락으로 중앙은행의 이익이 줄면서 재무부에 이관하던 이익도 별로 없다. 경제가 나빠지면 오히려 경기부양을 위해 더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생기는 민간의 자금수요 감소를 정부의 자금수요 증가가 압도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부가 재정적자를 내고 있는데, 중앙은행이 사주지 않고 오히려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지금 같은 구조는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경제가 나빠져도 금리가 상승한다면, 장기국채와 주식은 같은 자산군인 셈이다. 자산배분 효과가 없다.” 비록 소수의견이었지만, 설득력 있는 시각이었습니다. 현금, 그리고 높은 일드 (yield)를 주는 만기가 짧은 안전한 채권으로만 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6. 상업용 부동산시장의 차별화, 성장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편향 (Bias)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부동산투자회사의 시각은 독특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시장은 이미 가격조정을 받았기 때문에 내년 1분기를 저점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가장 낙관적인 전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핵심지역은 물론, 재택근무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MZ세대들의 영향으로 주변지역의 수요도 탄탄하며, 글로벌 연기금의 대체투자 확대 수요도 여전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 비즈니스 성격에 따라 편차는 크다고 합니다. 타격이 컸다 회복 중인 뉴욕은 낙관적이지만, 타격이 없었던 샌프란시스코는 보수적이며, 대출팀과 equity팀의 관점도 달랐습니다. 한국투자자들은 환헤지를 감안하면 수익률이 많이 낮아졌고, 국내의 불안한 부동산시장 전망 등에 기인해 수요가 거의 끊겼지만, 가격이 하락한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까지가 오히려 투자 적기라고 전망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서도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뉴욕과 실리콘밸리, LA,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같은 대도시보다 오스틴(텍사스), 피닉스(애니조나), 롤리-더럼(노스캐롤라이나) 솔트레이크시티(유타) 등 정부의 정책 인센티브가 제공되는 중남부, 선벨트 지역의 새로운 산업/과학단지 등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으며 향후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녁에 들렀던 한인타운 (이젠 “K-타운”이라고 불렀습니다)의 변화가 눈에 띠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맨하튼 전역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입니다. 밤 10시가 넘어도 영업을 하고, 치안도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더큰집’ 아랫층의 클럽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구요. 확인해보진 않았습니다만, “K-타운이 맨하튼에서 임대료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생각했던 그림과 다른 것이 많았던 출장이었습니다. 현지의 주장도 있고, 현지의 주장이 너무 일방적이라 역발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달러강세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비용상승에 대한 충격은 미국보다 주변국이 클 것이라는 점, 기대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기 어려워 금리는 더 상승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더 생각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